박인희 시낭송 | 노천명

박인희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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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희 시낭송

노천명 [자화상] 1938 책읽어주는 경성서림 Korean Literature


노천명(1911~1957 : 시인·친일반민족행위자)의 시 [자화상]입니다.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갖는 열등감과 자존감을 복합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시인 자신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형상화해 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처녀시집 \”산호림\”에 수록되었습니다.
전문은 블로그에 있습니다.
책 신청해주시면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읽어드립니다. ^^
블로그 : https://dednen.blog.me/
팟 빵 : http://www.podbbang.com/ch/1768589

노천명 [자화상] 1938 책읽어주는 경성서림 Korean Literature

[6.25전쟁 앞이야기]최악의 살인마 박헌영


홍민표와 오제도 검사의 활약으로 33만 명의 남로당원이 전향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숫자의 남로당원이 전국 각지에 남아있었는데요.
아무리 전향시키고, 체포해도 남로당 지하조직원들은 바퀴벌레처럼 계속 기어 나왔습니다.
당시 바퀴벌레, 아니 남로당원들은 왜 이렇게 많았던 것이고, 이 지하조직을 만든 박헌영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 걸까요?
박헌영은 1900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의 명문고인 경성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만큼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요. 게다가 야망까지 컸던 그는 성공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상해로 넘어갑니다.
박헌영이 상해로 넘어간 것은 좀 더 큰 물에서 놀아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데요. 막상 상해로 넘어가긴 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던 박헌영은 먼저 영어 학원을 다니며 기회를 탐색합니다. 그러던 중 이미 유명하고 또 자신이 존경하던 이동휘 장군과 함께 활동한 김만겸을 만나게 됩니다.
이동휘는 대한제국의 군인, 장군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인데요. 일본이 한반도를 뒤흔들던 당시 이동휘는 영웅과 같은 그런 존재였고 그런 이동휘와 함께 활동한 김만겸은 마치 자신의 일을 자랑하는 것 마냥 이동휘의 활약상으로 박헌영을 홀리게 됩니다. 남자다운 남자의 삶, 이동휘의 활약상을 들은 박헌영을 김만겸에게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되는데요.
김만겸 : 그러니까 남자라면 독립운동, 사회주의 오케이?!
박헌영 : ㅎ… 하악하악 네에!
김만겸은 그렇게 박헌영을 홀려 사회과학연구소에 포섭하게 됩니다. 박헌영 외에도 많은 인재들이 사회과학연구소에 포섭되는데요. 이렇게 수 많은 인재들은 공산주의가 됐습니다.
물론 똑똑한 박헌영은 단순히 김만겸의 유혹으로 공산주의가 된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멀리 있고, 일본에 붙자니 욕먹고 이미 자리도 없을꺼 같고 평등하다는 공산주의가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내가 지금부터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외치면 나중엔 공산주의 세력의 중심이 될 수 있겠지?’
이때부터 박헌영은 오직 한반도를 공산주의로 물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서 한반도에 들어와 조선 공산당을 조직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선공산당을 조직한 박헌영은 제국주의를 주장하며 움직이는 일본군에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고 꼬리가 밟혀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박헌영은 출소하자마자 다시 공산당을 조직하게 됩니다. 자신을 압박하는 일제의 압박도 반항심을 자극했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조선공산당이 세력화 되어가자 박헌영의 욕망도 커졌기 때문이죠.
이제는 변신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박헌영. 해방될 때 그는 ‘김성삼’이란 이름으로 벽돌공장 인부로 위장하고 있었는데요. 투옥되었던 사실과 위장한 일화가 여기저기 소문나기 시작하자 그는 공산주의자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20일 박헌영은 조선공산당을 재창당하며 지하당원들의 지지를 받아 조선공산당 내에서 서열 1위에 오릅니다. 드디어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는 이루게 된 셈인데요. 이때 서열 2위에 있었던 김일성은 이러한 결과에 매우 불만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더욱 자세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산주의 내에서는 서열이 1위였지만 대중의 인지도나 세력적인 부분에선 약했던 박헌영은 머리를 굴립니다.
박헌영 : 얼굴마담 한명만 있으면 되는데…
이 때 눈에 띈 사람은 바로 여운형. 공산주의자인데요. 이 사람은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를 통해 존재감이 확 떠오릅니다.
같은 고려공산당 출신이었던 여운형이 급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은 바로……………….!
1945년 8월초 일본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한국의 지도자를 찾아 협상하는데요. 이 때 여운형이 협상에 응해 큰 사고 없이 일본인들이 무사히 일본으로 넘어가게 했으며, 국민들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그 지도력을 인정받아 건국준비위원회의 장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박헌영 : 딱 인데?
형평성으로나 지도력으로나 뛰어난 역할을 했던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자 박헌영은 여운형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건국준비위원회에 X맨을 대거 심고는 건국준비 과정 중에 자신들,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일을 조금씩 하게 됩니다.
얘는 석방
얘는 감옥
한반도가 조금씩 공산주의 판이 되고, 좌익 위주로 돌아가자 민족주의계 인사들은 반발하여 건준에서 탈퇴해버립니다.
씨바(삐) 안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력이 굳건한 건국준비위원회는 9월 6일 여운형이 만든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개최하는데요. 이때 박헌영은 여운형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대동해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결정하고 바로 국가 수립을 선포해버립니다
사기가 올라간 박헌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한 사람…
사기가 올라간 박헌영은 분위기가 업되어 결국 도를 넘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는 박헌영이라는 인물,
생각보다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그가 도를 넘는 행위를 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렇게 화려한 남자의 삶을 살던 박헌영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히스토리 트립, 다음 편도 많은 기대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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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
6.25한국전쟁 막을 수 있었다
국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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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BGM
Track: Lost Sky Where We Started (feat. Jex) [NCS Release]
Music provided by NoCopyrightSounds.
Watch: https://youtu.be/U9pGr6KMdyg
Free Download / Stream: http://ncs.io/WhereWeSta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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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BGM
Track : 서리꽃 (Frost flower)
Composer : 눈솔
Watch : https://youtu.be/8ErdnyjZ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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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하야, 그 후는? [낭만논객] 81회 20150920


낭만논객 81회 20150920 TV조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에 하와이로 망명을 가게 되었는데…하지만 하와이 망명 후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 주변의 도움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낭만논객_81회]
[Ch.19] 세상에 없는 TV 이제 시작합니다.
공식 홈페이지 : http://tvchosun.com/enter/smnw/main/main.htm

이승만 대통령 하야, 그 후는? [낭만논객] 81회 20150920

들국화/노천명 (낭송:황석연)


영상:세인트/송성인

들국화/노천명  (낭송:황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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